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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가장 잔인한 처형 방법은 십자가 처형이였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이해할수 없게 십자가 처형에 대해 언급하셨읍니다.

“내가 하는 일을 너는 지금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중에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종종 나중에야 예수님을 이해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십자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숨어있는 십자가의 폭, 길이, 높이, 깊이 에 대해 아주 천천히 깨달을 뿐입니다.

겟세마네에서 골고다까지,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도움 없이 홀로 고통을 겪으셨읍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로마인들은 도울 사람을 찾아야만 했읍니다. 그것은 인간적 후대에서가 아니였읍니다. 단지 그들은 사경에 이르도록 고통 겪는 자를 산 채로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했던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를 좇아 예수님께서는 그 목표에 도달하시기 위해 여정의 마지막 구간에서 십자가를 대신 지어 줄 한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구레네의 시몬은 예루살렘의 거리 소음과 오물 속에서 ‘중죄인’과 함께 십자가를 짊어지고 군중의 구경거리가 된 채 강제로 체포되어 굴욕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어떠한 선택 받음이었는지요! 그렇습니다, 나중에 시몬 자신이 왜 로마인들에게 끌려갔던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되였을 때 무척 기뻤을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 말하면서 이 신비를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영원토록 완전하고 완전합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길은 완전하며, 인간적 생각을 무효하게 하시고 커뮤니티 구축 계획을 거부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예수님을 닮게 하고 예수님과 동등하게 만들 수 있는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을 통해 온전해지셨던 것처럼,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들을 통하여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위한 주님의 구원계획를 완성하기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부르심은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위한 참으로 큰 특권이고, 참으로 영광스러우며,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요엘라 크뤼거 자매
© 기독교마리아자매회, 독일 다름슈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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